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롯데그룹은 "어제 밤 신 명예회장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오늘 오후 별세했다"라고 밝혔다.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과 롯데그룹 주요 경영진들은 서울아산병원에 모여 신 명예회장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1921년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1948년 일본 도쿄에서(주)롯데를 만든 롯데그룹의 창업주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맨손'으로 시작해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과 함께 대한민국 1세대 대표 기업인으로 꼽힌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 본격적인 한국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기업인으로 자리잡은 그는 다시 고국땅을 밟고 투자에 나섰다. 기업보국(企業報國) 이라는 기치아래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6년 공사 끝에 1973년 지하 3층, 지상 38층의 당시 최고층 빌딩으로 1000여 객실을 갖춰 개관한 롯데호텔은 당시 동양 최대 초특급 호텔로 1억5000만달러가 투자됐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신 명예회장은 또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진 데 비해 유통이 취약한 것을 발견하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해 현 롯데백화점 본점인 ‘롯데쇼핑센터’를 1979년 12월 문열었다. 이외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그는 제철소도 건설할 뻔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직전 한국 정부로부터 모국에 제철소를 건립하라는 권유를 받은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국가 기간산업인 제철·제강을 국영으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박태준씨에게 바통을 넘겼다.
1984년에는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추진했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나 임직원은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잠실에 놀이공원은 승산이 적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밀어붙이면서 1989년 문을 열었다. 이에 관광산업 진흥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서울 잠실 롯데 타워 모습
신격호 명예회장 그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꼽힌다. 그는 1988년 1000억원을 들여 서울 잠실에 부지 8만7770㎡를 매입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서울시에 제2롯데월드 사업계획을 제출하고, 23년만인 2010년에서야 승인을 얻었다. 지상 123층 지하 6층의 규모로 높이만 554.5m에 이른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타워를 개장한지 한달만인 2017년 5월 3일 꼭대기층을 찾아 자신의 평생 숙원을 이뤘다.
한편 롯데지주 측은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봉사, 정열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시작한 사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부분을 엿보지 않는 그의 경영소신 덕분에 현재 관련 사업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고 말했다. 신 명예회장은 평소 임원들에게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롯데그룹 가계도
신격호 명예회장의 가족으로는 그가 18세였던 1940년 동향 출신인 노순화 여사(1951년 별세)와 결혼해 낳은 장녀 신영자 전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 그리고 1952년 일본에서 결혼한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사이에 낳은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다. 그리고 사실혼 관계인 부인 서미경씨가 낳은 딸 신유미가 있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향년 99세 일기로 별세하면서 사실혼 관계인 셋째 부인 서미경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서미경은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한 70년대 청춘스타.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9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 '푸른 사과'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당대의 '핫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서미경씨는 1973년에는 영화 '방년 18세' 주연을 꿰찼고 '여고교사', '청춘 불시착', '혼혈아 쥬리', '김두한 제3, 4편'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러던 중, 1981년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서미경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37세 연상인 고 신격호 회장의 세 번째 아내가 됐고 2년 뒤 딸 신유미(34) 롯데호텔 고문을 낳았다.
그리고 그외 신격호 회장 친척으로는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신격호 회장의 말년은 평탄치 못했다. 일본 롯데 경영을 맡은 신동주와 한국 롯데를 맡은 신동빈 사이에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3년 간 이어졌다. 2015년 가족끼리 대화가 일본어를 쓰는 녹취가 공개되어 한국기업이냐는 파장도 있었다 총수일가 등의 횡령ㆍ배임 혐의 사건으로 기소돼 지난해 징역 3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고령을 이유로 구속되지는 않았다. 신격호 회장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고 지분이나 경영 영향이 있다 그래도 전체적인 사업은 주로 일본보다 한국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롯데하면 로고송 껌이라면 롯데껌 롯데리아 롯데타워 롯데 월드 롯데자이언츠 야구단이 먼저 떠오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