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향년60세의 나이로 사망 별세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펠레(80·브라질)와 함께 올드팬들의 기억속 축구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그 마라도나가 26일(한국시각) 심장마비로 사망, 영면에 들어갔다. 마라도나는 2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3일 동안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언하고 그의 시신을 대통령궁에 안치한다고 발표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최근 빈혈과 탈수 증세를 나타냈고 이어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에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결국 레오폴도 루케 주치의가 마라도나 감독을 병원으로 인도해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마라도나 감독은 경막하혈종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막하혈종은 두부 외상 후 출혈이 발생해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질병이다. 여러 주가 지나게 되면 의식장애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마라도나는 의식이 또렷한 상태였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하지만 뇌수술 후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두부 외상에 출혈이 생겨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경막하혈종으로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라도나는 빠르게 퇴원하고 싶은 마음을 강조했고 집에서 회복을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했다.
선수 시절 마라도나는 보통 선수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인간 한계의 끝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 준 선수였기에 전문가들은 그를 '축구의 신'이라 불렀다. 현역 선수 중 '신계'로 통하는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도 자신 보다 앞선 마라도나를 펠레와 함께 'GOAT(최고의 선수)'로 인증했다.
현역 시절 마라도나는 펠레로부터 세계 최고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40년 전, 스무살에 아르헨티나 정규리그 득점왕과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남미 대륙을 평정한 그는 바로 유럽으로 무대를 옮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년,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마라도나는 1984년 이탈리아 나폴리에 입단하면서 레전드의 길을 시작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를 영입하면서 바르셀로나 구단에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였던 690만파운드(약 102억원)를 안겨줬다.
현재 최고 이적료 기록인 2억2200만유로(약 2927억원, 네이마르)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1980년대 유럽 축구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100억원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를 넘어 세계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역 시절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A매치 91경기에서 34골을 터트렸으며 아르헨티나의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마라도나는 클럽 커리어에서도 보카 주니오르스(아르헨티나), FC 바르셀로나(스페인), SSC 나폴리(이탈리아) 등 유럽과 남미의 명문 구단들을 거쳤다. 특히 나폴리에서는 공식전 257경기에 출전해 115골 29도움을 올리며 팀 공격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1984년부터 7년여를 활동하며 구단의 유일무이한 UEFA컵(유로파리그 전신) 우승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마라도나가 국가대표팀과 클럽에서 입었던 10번은 향후 최고의 선수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 1984년부터 1991년까지 7시즌 동안 몸담았던 이탈리아 나폴리는 아르헨티나 못지않게 슬픔에 잠겼다. 이탈리아에서도 중하위권 팀에 불과했던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이끌면서 사상 첫 이탈리아 프로축구 우승과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은퇴 후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와 중동, 멕시코 등에서 프로팀을 이끌다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의 힘나시아 라플라타 감독을 맡았다.
뛰어난 실력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다. 은퇴 이후까지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논란은 '신의 손' 논란이다.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4강전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 그대로 골로 인정된 후 마라도나는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말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당시 의도적으로 손을 뻗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마라도나에겐 약물 스캔들도 이어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도중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중도 귀국해야 했고 마약 중독 치료도 몇 차례 받았다. 마약과 알코올 복용, 비만 등으로 과거에도 심장 문제를 겪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이런저런 기행이나 문제적인 발언들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사생활을 둘러싸고도 말들이 나왔지만, 이같은 논란 속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한 축구 실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었다.
빅스타를 잃은 세계 축구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축구의 신'을 떠나보낸 인간계가 인생의 허무함에 망연자실하는 건 당연하다. '신계'에 도달했던 마라도나에 대한 예의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불리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도 트위터에 "아르헨티나 국민과 축구계에 매우 슬픈 날"이라며 "마라도나는 우리를 떠나지만, 떠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가장 최근에까지 최근 뇌수술을 받은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쾌유를 기원했다.
메시는 5일(한국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마라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마라도나, 나와 우리 가족은 당신과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바란다. 마음으로부터 포옹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끝내 안타까운 비보를 듣게 되었다. 이밖에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이자 토트넘 홋스퍼의 감독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역시 "마라도나는 나의 친구이자 영웅"이라며 "그와 축구 인생을 함께한 것은 행운이었다"라고 애도했다.
그리고 마라도나의 전 사위인 맨시티의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도 전 장인을 애도 추모했다. 아구에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스페인어로 "우린 당신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디에고"라는 글을 남겼다.
전 사위인 아구에로는 지난 2009년 2월 마라도나의 딸인 지안니니와 결혼했고 슬하에 아들 베냐민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성격 차로 인해 둘은 이혼했다. 이후 아구에로는 맨시티 여성팀 선수와 잠시 교제한 뒤 현재 모델 추신 소피아 칼제티와 연애 중이다.
잉글랜드의 축구스타였던 데비이드 베컴도 자신은 인스타그램에 마라도나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마라도나는 그저 열정과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던 순수한 천재였다"라며 "그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적었다.
포르투갈 출신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도 트위터에도 마라도나와 찍은 사진과 함께 "오늘 나는 친구와 작별했고, 세계는 영원한 천재와 작별했다"라며 "마라도나는 너무 일찍 떠났지만 무한한 유산과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다. 그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작스러운 마비로 향년 60세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소식에 국내 축구인 중 남다른 인연이 있는 65살 허정무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허정무 이사장은 오늘(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마라도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옛 생각이 나며 만감이 교차했다. '선수 시절 상대했던 세계적인 스타들이 왜 이렇게 빨리 가나' 싶기도 하고, '벌써 그렇게 됐나' 싶더라"고 말했습니다.허 이사장은 국내에서 마라도나의 얘기가 나오면 가장 많이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축구인이다. 둘의 인연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시작이었다. 당시 한국은 1-3으로 졌고, 조별리그에선 1무 2패로 탈락했다.
20년 넘게 흘러 이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각각 한국과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조별리그 상대 팀으로 만났다.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가득한 강팀이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4-1 대승을 거두며 감독으로도 한국을 꺾었다. 선수와 감독 모두로 한국을 상대하고 승리한 사람이 됐다.
당시 허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1-4로 졌으나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이후 한국에서 U-20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자 한국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2017년 3월 조 추첨식에 참가해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한 조에 포함되게 만들었다. 마라도나는 수원 화성에서 파블로 아이마르, 신태용 감독, 이관우, 배우 류준열 등과 미니 축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손가락 욕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마라도나는 현장에 있던 한 관중에게 손가락 욕을 했는데 아이슬란드와 1차전에서는 한국 관중을 향해 눈을 찢는 인종차별 제스처를 하기도 했다. 몸람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멀리서 온 아시아인들에게 우리를 응원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다이다"라며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리고 이번 마라도나의 사망소식에 특히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 1984년부터 1991년까지 7시즌 동안 몸담았던 이탈리아 나폴리는 아르헨티나 못지않게 슬픔에 잠겼다. 나폴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를 추모하기 위해 홈구장 명칭 변경을 고려 중이다. 이탈리아 현지 기자인 파브리시오 로마노는 26일(한국시각) 자신의 SNS를 통해 "나폴리가 홈 구장인 스타디오 산 파올로를 마라도나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아우렐리오 데라우렌티스 나폴리 회장은 '라이1'과 가진 인터뷰에서 "마라도나는 나폴리 그 자체를 대표한다. 우리 나폴리 지역은 지진의 후유증으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디에고가 나폴리 사람들을 부활시켜줬다"며 고인에게 극찬을 보냈다.
데라우렌티스 회장은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을 다룬 TV 시리즈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데라우렌티스 회장은 이탈리아 영화 및 연예계의 거물이다. "나는 디에고가 나폴리에서 보낸 나날에 대한 드라마를 12개월에 걸쳐 작업하고 있었다. '더 라스트 댄스'와 비슷한 작품이 될 것이다. 마라도나와 펠레는 둘 다 역사상 최고지만, 캐릭터는 디에고가 더 앞섰다.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 라스트 댄스'는 역대 최고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불스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최근 큰 인기를 끌었다. 데라우렌티스 회장은 작업 중이라는 작품이 다큐멘터리인지 드라마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았으나, 마이클 조던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시리즈 다큐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라스트 댄스'처럼 세계적인 OTT 플랫폼이 서비스할 경우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촌에서 만난 비야파네와 1989년 결혼해 두 딸을 뒀지만 2003년 이혼했다. 이혼 당시에는 재산을 분배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이혼한 전 부인이 자신의 돈 750만파운드(약 137억원)를 훔쳤다며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현지언론에 따르면 마라도나와 전 부인 클라우디아 비야파네의 변호사들이 공동 재산을 분할하는 협상을 했으나 결렬되자 마라도나 측이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로 했다. 마라도나 측은 비야파네가 자신의 돈을 이용해 미국 마이애미 등지의 아파트를 사고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해 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로시오 올리바(25)라는 여성과 약혼했으나, 지난해 10월 올리바가 귀중품을 훔쳐갔다며 고소한 바 있다.
그리고 2016년 마라도나가 30년 넘게 부인했던 자신의 혼외아들을 친자로 인정했다.AFP통신 등 외신은 30일(이하 한국시간) 마라도나가 30년 만에 자신의 혼외아들을 친아들로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의 혼외아들인 디에고 시나그라(디에고 마라도나 주니어)는 1986년 나폴리에서 태어났다.마라도나와 이탈리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수 차례 소송을 통해 사실상 마라도나의 친자로 확인됐다. 1992년 이탈리아 법원은 마라도나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003년 소송에서도 이탈리아 법원은 그가 마라도나의 친아들임이 맞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2003년 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는 등 판결에 불복했다. 마라도나는 이후 시나그라를 만났지만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아들로 인정받은 그는 이탈리아 국적의 축구 선수다. 2003년 16세로 스코틀랜드 하부리그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12년에는 아버지 모국인 아르헨티나 헤를리를 연고로 하는 4부 클럽 엘 포르베니르에 입단해 뛰기도 했다.
부자의 재회는 마라도나의 전 여자친구인 로코 올리비아가 주선했다.올리비아는 마라도나의 혼외딸인 자나 마라도나와 함께 두 사람을 위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자나 역시 긴 법적 다툼 끝에 딸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마라도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시나그라를 친아들로 인정했고 그 자리에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며 "나를 많이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나그라는 트위터를 통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북받친다"며 "이날을 위해 30년을 기다렸다. 이제는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마라도나에게는 현재 전 아내인 클라우디아가 낳은 딸 두명과 전 애인 베로니카 오헤다가 낳은 아들이 더 있다. 거기다 당시에도 마라도나를 상대로 한 친자 확인 소송이 두 건 추가로 진행 중이어서 자식이 더 늘어날 지도 몰랐다.
그리고 예상대로 마라도나의 자녀는 현재까지 알려진것만 축구팀 선수 숫자와 똑같은 11명이다. 자식이 많은 만큼 마라도나가 남긴 막대한 유산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마라도나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들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마라도나의 재산은 적어도 수백만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가장 최근에 감독으로 몸담았던 아르헨티나 클럽팀 힘나시아 라플라타에서 받은 연봉만 해도 180만달러(약 20억원)에 이른다. 마라도나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법적 유산 상속인은 5명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마라도나가 인정한 자식은 달마와 지아니나, 디에기토 페르난도, 디에고 주니어, 자나 등 5명이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혼외자녀까지 포함하면 계산이 복잡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2000년부터 5년간 쿠바에 체류했던 마라도나는 쿠바에 3명의 자녀가 더 있다고 인정했다. 이 들을 포함해 마라도나의 혼외자녀는 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결국 마라도나가 총 11명의 자식 중 누구의 이름을 유언장에 올렸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지난해 11월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며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시 마라도나는 “내가 나이가 들수록 자녀들은 내가 죽은 뒤 남길 갈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 이혼한 아내 클라우디아 비야파나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 달마와 둘째 딸 지안니나는 불화를 이유로 상속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실제로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는지의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복잡한 유산 문제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엔 마라도나가 "부유세에 대한 법이 제정되길 신에게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부자에 대한 협력기여금을 걷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길 신에게 기도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5개월 넘게 봉쇄를 이어가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선 최근 부유세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3월 코로나19 봉쇄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총 4번 취약계층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정부의 재정이 세수 감소로 크게 흔들리면서다.
아르헨티나 집권여당은 2억 페소(약 32억원)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는 부자들에게 '협력기여금' 명목으로 1회에 한해 특별세를 걷자며 법안을 준비 중이다. 세율은 재산 규모에 따라 최저 2%, 최고 3.5%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유세에 대한 법이 제정되면 마라도나는 1순위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선 더 가진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면서 부유세에 적극 찬성했다. 그러면서 마라도나는 청소년 시절 찍은 빛바랜 사진 1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위 사진은빈민촌에서 태어나 흙바닥에서 축구공을 차던 그가 가족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공개하며 마라도나는 "나도 이렇게 어렵게 살아봤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사진인 셈이다. 마라도나의 사진엔 40만에 육박하는 '좋아요', 7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마라도나 추모영상-엠빅뉴스
한편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두문불출하던 마라도나는 9월 30일 처음으로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힘나시아 라플라타 클럽의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던 마라도나는 과거의 수술경력 등으로 아르헨티나 보건부 기준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에 따라 그는 그간 외부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끝내 급성 심근경색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마라도나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참 파란만장하면서도 보면 인생이 참 허망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