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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신춘호 회장 별세 사망 향년 나이 92세 농심 가계도 창업주 신라면 새우깡 성공 이력 후계자 장남 신동원 부회장 롯데가 형제 갈등 일화 총정리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농심은 “신춘호 회장이 27일 오전 3시38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준호 회장은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농심그룹은 신춘호 회장을 그룹장으로 치른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고 발인은 30일 오전 5시다. 발인식 당일 주요 임원들을 중심으로 소수만 참여한 영결식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1930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형제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일본 롯데에서 일하다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창업해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라면에 애정을 보였던 신춘호 회장은 별세 이틀 전인 이달 25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았다.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것이다.

롯데공업으로 라면사업을 시작한 신춘호 회장은 형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갈등을 빚어왔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라면 출시를 강력히 반대하자 사명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꿨는데, 당시 일로 두 형제의 관계는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신격호 회장은 신춘호 회장에게 ‘롯데’자를 빼라고 통보했고 신춘호 회장은 1978년 롯데공업을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을 담아 농심으로 변경했다. 이후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 등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농심은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결국 두 형제는 의절했고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농심은 일찌감치 지주사 지분을 차등 배분하는 방식으로 후계를 정리해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막아 놓으면서 롯데가의 형제의 난이 일어날 때마다 비교됐다. 또 지난해 형 신격호 회장이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빈소에도 찾지 않았다. 다만 당시 신격호 회장의 빈소에는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대신 보냈다. 당시 일각에서는 끝내 형제의 난이 봉합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농심 그룹 가계도 신춘호 회장 빈소 모습

그러나 이날 빈소에는 고인의 형 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조화가 빈소에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27일 별세한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범롯데가 일가의 조문이 이어졌다.

재계에 따르면 조카인 신동주 현재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 신춘호 회장은 신동빈 회장의 작은 아버지다. 귀국을 하더라도 자가격리 기간 등을 고려하면 조문 등 장례 일정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날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마련된 신 회장의 빈소에는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았으며, 장녀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도 빈소를 지켰다. 또한 차녀인 신윤경 씨와 사위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장녀 서민정 씨도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도 이날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도했다. 신 회장의 형제는 고 롯데그룹 명예회장 신격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 신정숙 씨, 신경애 씨, 신경숙 씨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빈소를 찾았다.

후계자로 주목되는 농심 차기 회장에는 신춘호 회장 장남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원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00년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신 부회장은 농심 지주사인 농심홀딩스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농심은 1970년대 초 닭고기 육수 중심의 국내 라면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했으나 신 회장은 닭고기 대신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소고기라면’으로 승부수를 던져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 ‘너구리’ ‘육개장 사발면(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히트 상품을 줄줄이 출시하며 1991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신 회장은 직접 라면 이름을 이을 정도로 라면 사업에 애정을 보였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제품 이름이나 광고 카피가 적지 않다. 자신의 성(姓)인 매울 신(辛)자를 따서 만든 신라면이 대표적이다. 스파게티처럼 짜장 소스를 비벼 먹는다는 의미로 만든 '짜파게티'(짜장+스파게티)와 새우깡 등의 이름도 그의 대표작이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등 광고 카피도 그의 작품이다. 고인이 남긴 많은 제과 라면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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