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3시 59분에 향년 78세로 나이로 사망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앞서 지난 2015년 6월에는 삼성서울병원 20층 VIP병실에서 인공호흡기나 외부 의료 장치에 전혀 의존하지 않은 채 병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더팩트> 카메라에 포착돼 건강 상태가 호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그러나 그 이후 이건희 회장의 투병 소식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의 각국의 주요 외신도 이건희 회장 사망소식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삼성을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칩 분야의 글로벌 거인으로 만들었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대형 기업인들처럼 두 차례 유죄를 선고 받고 사면도 두 차례 받은 이건희 회장이 78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숨을 거뒀다"고 타전했다.
NYT(뉴욕타임즈)는 특히 이 회장이 1966년 삼성 계열사였던 동양방송을 통해 입사한 기록부터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토리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또 삼성 측이 이날 "그와 함께한 여정과 모든 기억에 감사할 것"이라고 밝힌 성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서 AP통신은 "조그만 TV 제조사를 전 세계 가전제품 업계의 거물로 변모시킨 이건희 회장이 78세로 별세했다"며 "이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지배권을 물려받은 후 30여년 간 삼성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을 만드는 세계 최대 브랜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 회장의 리더십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한국 경제를 일구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고 했다.
또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숨지다'라는 제목으로 타전한 프랑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병석에 눕게 됐고 이후 6년 이상 투병해왔다"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영국 로이터통신도 "78세로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업을 한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이 회장은 삼성을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혁신기업으로 만들고 한국을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 시킨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주변 나라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한국의 대기업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일요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며 "이 회장이 2014년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투뱅을 해왔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삼성전자는 25일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면서 "이 회장은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가계도
이건희 이명희 회장 모습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 생전 모습
한편 故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 씨와 고인이 된 창희 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 씨가 있다. 현재 형제중에 현직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신세계그룹 회장인 이명희(여동생)씨가 유일하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인 아버지 이병철을 따라다니며 대구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47년 상경해 혜화초등학교를 다녔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 제일제당 막내아들인 건희에겐 또래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1982년도 이건희 대한 레슬링협회 회장 시절 모습
2007년 이건희 IOC위원 활동모습
이건희 회장이 가족과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 참관 모습
그리고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을 받들어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이런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2007년 이건희 IOC위원이 2014 겨울올림픽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에서 평창의 개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시 평창은 유치에 실패했고, 2018년 유치에 성공했다.
이건희 회장 홍라희 여사 결혼 사진
이건희 회장은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엔 당시 전설로 불리던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난 일화도 있다.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1966년 이 회장은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가 비자문제로 미국에 재입국하지 못하고 도쿄로 향한다.
그런데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한다. 슬하에는 1남 3녀를 두었다. 장남 아들 이재용 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녀 딸 이부진(만 50세) 호텔신라 사장, 차녀 딸 이서현(만 47세)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막내 딸 이윤형(향년 26세)(사망)씨를 낳았다.
위 사진은 1972년 2월 당시 이병철 삼성 회장의 62회 생일을 맞아 자택에서 찍은 사진. 삼남인 故 이건희 삼성 회장,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왼쪽 둘째), 맏딸 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맨 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맨 앞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어릴적 모습 사진이다.
이건희 회장 취임식 모습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발언 때 모습
故이건희 회장 경영 이력
한편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이병철 창업주는 1971년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병철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1977년 니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이건희 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 1993년 일부 생산라인에서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광경을 지켜본 이후 그룹 내 최상위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긴급소집해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임원들과의 자리에서 내놓은 주문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발언은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 혁신 기업의 자리에 올렸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 기조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봐도 과감하고 선도적이다. ‘디자인과 경영은 별개가 아니다’는 ‘디자인경영론’부터 학력과 성별의 장벽을 무너뜨린 ‘열린채용’, ‘품질경영’, ‘5WHY 사고론’ 등 이건희식 경영 방침은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또한 이 회장은 오늘날 세계적 IT 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모바일’·‘가전’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 근간을 갖췄다 그리고 1990년대 진출한 모바일 산업도 오늘날 ‘삼성폰’의 근간을 다졌다. 당초 휴대전화 사업은 핀란드 노키아나 미국 모토롤라에 비해 한참 뒤처졌지만, 1995년 이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을 거치면서 품질을 크게 개선했다.
오늘날 세계 1위인 ‘삼성TV’ 역시 이 회장의 안목에서 비롯됐다. 당시 브라운관에 머물러있던 TV의 액정표시장치(LCD) 전환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고, 투박한 디자인을 바꾸기 위해 디자인팀을 해외로 파견했다. 그 결과 탄생한 ‘보르도TV’가 주목받으며 TV시장 세계 1위에 올랐고, 13년째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결혼식 때 가족 사진모습
한편 이건희 회장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부인 홍라희 관장 등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가족중에서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는 2005년 11월 18일 사망했다.
생전에 이윤형씨는 다른 재벌집 자녀와 다르게 명품보다는 수수한 옷차림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유학 중이던 윤형씨는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겨져 있다. 당시 삼성 측은 교통사고로 사망 원인을 밝혔지만, 자살이었다는 풍문이 아직도 있다. 뉴욕에서 불교식으로 막내 딸 장례를 치른 이건희 회장은 서울 혜화동 원불교 원남교당에 윤형씨 빈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후 종종 미국을 찾아 딸을 추모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원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이 회장은 1973년 장모인 고(故) 신타원 김혜성 여사의 권유로 원불교에 입교했다. 이 회장의 처가는 장인 고(故)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을 비롯해 가족 대부분이 원불교 신자이다. 이 회장의 원불교 법호는 ‘중산(重山)’이다.
이 회장은 아내 홍라희 여사와 함께 원불교 교단의 크고 작은 불사(佛事)를 도왔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북 익산의 중도훈련원과 미국 뉴욕주의 ‘원다르마센터’.다.
중도훈련원은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들이 교육훈련기관으로 이 회장의 법호에서 ‘중산’과 아내인 홍라희 여사의 법호 ‘도타원’에서 한 자씩 따서 이름을 지었다. 원불교의 미주 총부 역할을 하는 원다르마센터도 2011년 이 회장과 홍 여사가 약 120억원을 시주해 만들어졌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거리 49만 6000㎡(약 15만평) 규모의 땅에 세워진 원다르마센터는 원불교의 미국 포교 전진기지로 원불교 신자들의 수행공간도 겸하고 있다.
천도재는 망자의 넋을 기리며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종교의식으로, 죽은 날부터 일주일이 되는 날에 시작해 49일간 총 7번을 지낸다. 천도재 장소는 고인이 신앙생활을 했던 서울 원남교당이나 익산의 중앙총부가 유력하다.
한편 삼성은 이날 "장례는 고인과 유과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 으로 치르기로 했다"라며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장례를 총 4일간으로 치를 예정으로 오는 28일 발인 예정이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4시57분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부회장의 자녀 이자 이건희 회장의 손자 지호(20)군과 손녀 원주(16)양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어록으로 돌아 본 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삶과 철학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경영에 대해 오랜 시간이 흘렸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과 긍정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삼성이란 기업이 대한민국에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고 이젠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가 되기까지 이건희 회장의 노력도 분명 있다. 향년78세 나이면 100세 시대 한창 활동하고 노년을 즐길 나이인데 좀 일찍 세상을 떠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