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역 중 한 명인 유상철(50)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7일 프로축구연맹은 "유상철 감독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마지막까지 병마와 싸웠으나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유 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경 사망했다.
1971년생인 유상철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을 이끌어 낸 영광의 주역 중 하나다. 1994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일본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약했고 이후 다시 울산으로 복귀해 2006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 시절 한국 축구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로 꼽히며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이상 선발 라인업에서 공수를 책임졌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 전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월드컵 후에는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과 함께 대회 공식 BEST11에 선정되기도 했다. 통산 A매치 기록은 124경기 출전, 18골이다.
유상철 감독의 축구 사랑은 현역 은퇴 후에도 이어졌다.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와 대전 시티즌, 울산대학교를 거치며 지도자 단계를 밟은 유 감독은 2018년 전남드래곤즈, 이듬해 인천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유상철 전 감독은 인천 사령탑에 있던 지난 2019년 10월 황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유 전 감독은 투병 중에도 벤치를 지키며 그해 인천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아냈다.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고 투병에 전념해왔다.
유상철 감독은 췌장암 투병 중에도 병마와 싸우며 선수시절 때 보였던 강한 의지를 수차례 드러낸 바 있다. 유 감독이 뛰었던 요코하마는 유 감독의 건강 악화 소식에 응원을 보냈으며,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유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이달 초 성금 모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상철 감독은 이후 항암 치료를 이어나갔다.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예정대로 치료 스케줄을 소화했다. 확실히 운동을 했던 몸이라, 힘든 항암 치료를 씩씩하게 이겨냈다. 물론 고열로 몇차례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하는 등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2020년 6월, 당초 예정보다 한번 더 진행된 마지막 13차를 끝으로 항암치료를 마쳤다. 검사 결과는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암이 줄어들었다.
대외 활동을 이어갈 정도로 호전된 유 감독은 현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인천 복귀까지 염두에 둘 정도였다. 먹는 약으로 치료법을 변경했고, 췌장쪽 암은 거의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았다. 간으로 전이된 암 역시 거의 사라졌다. 예능 출연과 다큐멘터리 등으로 소통을 이어가던 유 감독에게 다시 이상이 온 것은 지난 1월 초. 유 감독은 갑작스레 두통을 호소했고, 진단 결과 뇌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상철 감독은 시술을 받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유 감독은 강했다. 2월말부터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눈에 띄게 호전되며, 집에서 통원치료를 이어갔다.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렸지만, 유 감독이 직접 나서 진화하기도 했다. 씩씩하게 싸워나가던 유상철 감독의 병세는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뇌쪽이 문제였다. 뇌압이 높아지며 병원에 입원한 유 감독은 집중적인 케어를 받았다.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반복하며 암과 싸우고 또 싸웠다.
유상철 감독은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암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한-일월드컵의 영웅은 결국 하늘로 떠났다. 지난 7일 오후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전해졌고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월드컵 4강 영웅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멤버들이 모두 달려와 고인을 추모했다.
필자도 유상철 감독이 암을 이겨내길 바랬지만 안타까운 비보를 접해서 매우 슬프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길 바라며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